해외여행

나폴리-폼페이-소렌토-나폴리

widebada 2013. 8. 23. 22:26

2013년 8월 18일(일) 맑음

 

새벽에 일어나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 폼페이를 들러본 후 소렌토로 가서 배를 타고 다시 나폴리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기차는 사철이라 낡고 상태가 좋진 않았지만 주로 1등급만 타고 다녔으니 이런 것 타 보는 것도 새로웠다. 특히 소렌토에서 나폴리로 올 배를 탄 것이 탁월한 선택이고 시간이 맞아 떨어져 행복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헤치고 달리는 배에서 감탄사의 환호를 지르다.

 

[폼페이]

 

폼페이는 기원전 14년부터 살았으며 로마보다 발달하였다. 폼페이는 배수비오 화산, 평야, 바다의 세 곳으로 이루어진다. 폼페이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로마가 폼페이의 문물을 배워갔고 수로는 로마가 남겼다. 79년 배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고 폼페이가 화산재로 덮여 발파 공법으로 유물을 다 파냈다. 이 유물들은 현재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검투 경기장>

폼페이 검투 경기장은 등급이 없고 입장권을 가격 차이에 따라 판매해 자리가 정해졌다. 일종의 내기 도박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폼페이인들은 그늘을 만들기 위해 벽을 높이 만들었고 천장도 만들어 대부분이 그늘이었다. 또한 물이 귀하기 때문에 지붕 안쪽으로 경사지게 해 물을 받아 사용하기도 했다.

 

<오페라 하우스>- 오른쪽 원 가운데서 노래를 하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왼쪽 돌의 구명은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쉴 때, 주막이나 여관에 머무를 때 끈을 매어 두는 곳이다.

 

<도로, 주차장, 횡단보도>

차도 가운데를 높게 하여 양옆으로 물이나 낙엽이 빠지게 하였다. 차도에 물이나 동물의 분뇨가 흘러가기 때문에 걷기에 불편함을 막기 위해

커다란 돌로 횡단보도를 만들어 주었다.

 

 

 

발파 작업 후 유물 수집 당시 나타난 사람 고형물

 

 

 

<빵만드는 기구>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밀을 갈아 빵을 만들고 총 4번을 가는데 등급에 따라 가격을 달리 매겨 판매했다. 빵을 굽는 화덕에는 굴뚝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 우리는 바 하면 술을 떠오르지만 그 당시는 술이 아닌 밥을 먹는 곳으로 사용했다.

 

<셔터 홈이 있으면 상가, 없으면 집이었음을 나타내고 대체로 1층은 상가가 많았다.>

 

 

 

벽돌을 쌓을 때 불럭 쌓기처럼 서로 맞추는 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소렌토]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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